광복 후 독재의 시련을 겪었지만, 폭발적이고 빠르게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의 경험은 세계 어디에 내놓더라도 손색없는 귀중한 경험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헌정기념관에서는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다. 헌정기념관 방문예약은 https://travelife-chan.tistory.com/42 를 참고하면 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국회의사당의 본건물이다. 헌정기념관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약 5분 가량을 더 이동해야 한다. 주말에는 본회의장-헌정기념관을 왕복하는 셔틀버스 운행이 중지되기 때문에, 걷는 것은 필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그래도 울창한 나무그늘이 있어 이동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이렇게 생긴 국회도서관 건물 역시 지나쳐서 계속 오른쪽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토요일인 오늘은 국회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이어서 아쉽게도 내부 관람을 하지는 못했다. 다음번에 온다면 방대한 자료에 파묻혀 온전히 하루를 지내봐야겠다.
요렇게 국회참관셔틀 정류장까지 왔다면 이제 헌정기념관에 도착한 것이다! 앞에 위치한 방문자센터에 들러, 참관 기념품을 수령했다. 학생들에게는 물병(보틀)을, 성인에게는 장바구니를 준다고 한다. 성인이지만 '대학생'임을 어필한 결과, 보틀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보틀과 장바구니는 갭이 좀 크잖아....
보틀은 투명색으로, "National Assembly"라는 선명한 프린팅이 제법 예뻤다. 뜨거운 음료 역시 담을 수 있어 꽤나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암튼 오늘의 본목적은 기념품이 아니라 의회의 변천사이므로, 기념관 내부로 진입했다.
헌정기념관의 하이라이트는 6번 전시관인 국회역사관이다. 제헌국회부터 제 18대 국회까지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다.
다만 19대 국회가 폐회한지도 한참이 되었는데 19대 전시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19대 국회 시절 결코 한국 정치가 조용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나기에 더더욱.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처음 진행된 5.10 총선거, 제헌국회의 구성, 미완에 그친 반민특위 활동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 중심적 위치에 있었던 국회의 모습을 영상자료와 시각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
의회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던 유신 시절의 모습도 생생하다. 초대 국회부터 18대 국회의 변천사는 하루라도 바람 잘 들 날이 없었던 한국 현대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느낌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거치면서 무력화된 의회민주주의와, 그것을 되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피를 깎는 노력들을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헌정기념관 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원문이 보존되어 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의 위기에 몰렸던 대통령,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서 다시 정치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노무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쯤되면 이곳을 한국 현대 정치사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큰 회랑을 건너, 의회민주주의관으로 이동했다. 중앙 홀에는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와, 이색적인 국회 기록들이 남아 있다. 3대가 국회의원을 지닌 사람들이라던지, 국회 본회의 최장시간 발언을 한 의원이라던지(2016년 테러방지법 통과 반대 필리버스터 때의 이야기다.). 이들의 모습 역시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의회민주주의관에서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모습들을 사료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5.10 총선거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선거벽보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통해, 당대를 관통하던 정치 슬로건과 쟁점들을 엿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지울 수 없는 '독재'라는 꼬리표의 촉발제가 된, 그 악명 높은 긴급조치 관보 역시 이곳에서 열람할 수 있다. 유신독재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 반대하는 시민들의 입을 막는 것은 필수였을 것이다. 물론 정치의 실종을 불러일으킨 억압의 댓가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다루고 있는 이념은 무엇인지, 우리가 지난 70여 년간의 국회를 통해 알 수 있는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의회민주주의관을 나가기 직전 상영되는 영상물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 시선을 그대로 압축한다. 다만 영상물 속에서 국회가 맨날 싸움터로 변질하는 것은 시민의 오해라는 주장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듯했다.
일부분 맞는 표현이지만, 우리나라 국회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의정에 반영하여 토론하고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싸운다면', 지금처럼 신뢰도가 바닥을 기는 일이 생길까? 국회 불신에는 분명히 국회의원 스스로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헌정기념관에서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차 갔다가, 무거운 마음과 깊은 고민에 빠져 국회를 빠져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 여행자에게 국회 밖 늘어서 있는 여의도의 빌딩숲은 참 낯설다. 국회를 들어올 때는 마냥 멋지게만 보였던 도시의 모습이, 고민을 안고 국회를 빠져나올 때는 낯설게 보여지다니. 조금은 아이러니다.
아무튼, 국회 헌정기념관은 대한민국의 현대 정치사를 가볍게 공부하기 딱 좋은 곳이다. 할 일 없는 토요일 오전에, 잠깐 짬을 내서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점 하나는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이 만족감이든 불편함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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