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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Germany/뮌헨&근교 Munich&Outskirts

에어차이나 B777-300ER 뮌헨-베이징(MUC-PEK) CA962 비즈니스 탑승후기

12시간이 넘는 공항노숙을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탄다. 베이징까지 10시간, 서우두 공항에서 3시간을 경유하여 다시 인천까지 1시간 30분을 날아가야 하는 비행. 비행기 타는 것 자체는 이제 거의 도가 트다시피 해서 별 걱정은 안 되지만, 12시간을 꼬박 샌 몸뚱아리가 비명을 지르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공항에 주기되어 있던 비행기들 태반이 루프트한자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보딩 시간이 되자마자 줄을 서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창 너머로 보이는 신도색 적용 루프트한자 A350.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로 훨씬 깔끔해진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하여튼 이쪽도 아시아나 못지않게 도장은 참 예쁘다.

보딩을 하려나 싶었는데, 게이트가 묘하게 생겼다. 아무리 봐도 보딩브릿지가 들어갈 사이즈는 아니지 않은가?

결국 리모트 당첨ㅋ

황량한 활주로 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을 가서 또 황량한 활주로에 내린 뒤 스텝카로 계단을 올라가 비행기에 타야 한다. 안그래도 12시간 깨있어서 빡치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빅엿을 선사하실 줄은 몰랐다.

김포에서 베이징 갈 때도 리모트, 뮌헨에서 베이징 갈 때도 리모트(...)

버스는 그냥 평범한 시내버스처럼 생겼다. 미리미리 안 타면 당연히 꽉 찬 만원버스에서 서서 간다. 앉아가려고 뒷차를 기다리면 비행기를 늦게 타고, 머리 위 선반은 이미 다 점령되어있다(...) 비행기는 무조건 빨리 타고 먼저 내리는 게 진리.

베이징까지 모셔다 줄 아니 나를 실어갈 항공편은 에어차이나 B777-300ER기종. 일등석-비즈니스-프리미엄 이코노미-이코노미 4클래스를 꿋꿋하게 돌리는 비행기다.

스타얼라이언스 특별도장이 채색된 비행기의 모습. 외관만 이렇게 칠해놨지 비행기 내부는 여타 항공기랑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내 자리는 비즈니스 클래스의 첫 줄인 11A. 에어차이나 B777-300ER 기종 공통으로, 11열을 제외한 뒷줄부터 오토만 공간이 급속하게 좁아지기 때문에 잘 때 상당히 불편하다. 정말 양발을 모으고 옴싹달싹 못 할 정도로 좁아서 뮌헨 오는 길에 크게 혼난 적이 있어, 돌아가는 비행기는 바로 첫 열로 지정.

11열의 경우 웹체크인 시까지는 블락처리되어있는 좌석이므로, 공항 카운터에서 자리 옮겨달라고 해야 한다.

보딩패스와 신문. 뮌헨 출발이라 그런지 보딩패스를 루프트한자 걸 그대로 갖다쓰네...?

2-2-2 배열의 닭장 비즈니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 직전에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인지라, 탑승률은 처참할 정도로 낮았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2/3을 비워서 갔을 정도. 반대 상황이었으면 어땠을라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좌석 사이사이로 작은 물건들을 올려둘 공간은 충분했다. 다만 저 튀어나와있는 딱딱한 베개가 정말 골칫덩어리였는데, 이건 뭐 떼고 싶다고 떼어버릴 수도 없으니...

모니터 사이즈는 작지 않지만, 어차피 한국어 지원도 안 되고 볼 영화도 없어서 그냥 꺼버렸다. 중간중간 자다가 깨서 할 일 없을 때 게임하거나 비행기 위치 보는 용도로 쓰면 좋다. 영화는 정말 볼 게 없으니 미리 다운로드라도 받아오자.

웰컴 드링크와 함께 기종인증. 샴페인 맛은 그냥저냥 적당히...?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또 완전히 입에 맞는 건 아니었다.

슬리퍼와 기내 어메니티. 슬리퍼는 지금까지 비행기에서 받아보았던 것 중에 가장 퀄리티가 좋았고, 어메니티는 한국 도착할 때까지 뜯어보지도 않았다.

록시땅 브랜드라고는 하는데, 어차피 립밤이랑 가방만 록시땅 거고, 칫솔치약은 이미 라운지에서 받아온 게 있기 때문에 귀찮게 또 저걸 뜯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는 않았기 때문. 아직까지 집에 두 개 방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그냥 친구 선물로 줘버리려고

탑승을 모두 마치고 비행기가 출발을 시작하자, 모니터에서 귀여운 안전안내방송이 나온다. 모 항공사의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K팝 안전비디오보다 훨씬 요점이 눈에 잘 들어온다.

기내 안전비디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비상시 승객이 해야 하는 요령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적당한 세련됨을 주기 위해 부가적인 영상을 삽입하는 것이야 좋지만, 땅콩처럼 완전히 주객전도가 되어 내가 지금 안전비디오를 보는지 K팝 영상을 보는지 헷갈릴 정도라면.... 글쎄, 안전비디오 취지와는 어긋나지 않을까.

곧 승무원이 와서 기내식 주문을 받는다. 서울-베이징 구간에선 주지도 않는 메뉴판이 등장했다.

식사-간식-식사로 이어지는데, movie snack의 의미가 있나...? 어차피 곯아떨어질건데ㅋ

음료 리스트. 이탈리아산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는데 기내에 실려있지 않다고 해서 그냥 독일 레드와인으로 바꿨다. 아니 기내에 없는 걸 메뉴판에는 왜처박아놔ㅋㅋㅋㅋ

중국산 와인과 코냑, 위스키 등 독주도 실려있긴 한데 비행기 안에서 독한 술 마시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그대로 덮었다.

저런 것들 내 돈 주고 사 마시기는 힘든 술 맞긴 한데... 기내에서 잘못 마시다가 속 안 좋아지느니 그냥 안 마실란다. 건강이 최고지 아암.

무튼 식사 주문도 끝나고, 비행기는 뮌헨 공항을 힘차게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유럽의 청정하늘을 날아, 미세먼지 공장의 발원지인 중국의 뿌연 하늘로 날아가는 항공기.

요새 한국에서도 몇년만에 미세먼지 없는 청정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밖을 나가질 못한다. 차라리 미세먼지 농도도 나빴으면 덜 속상하기라도 하지...

옆자리가 비었길래 냉큼 이불이랑 배게랑 다 던져놨다.

이불엔 First Class Only라는 말이 적혀있지만... 저거 다 개소리다. 그럼 진짜 일등석에도 이거랑 똑같은 이불 던져주나...? 퍼스트 타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아무튼, 이불 자체는 충분히 1등석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퀄리티가 좋다. 이쪽이 슬리퍼도 그렇고 이불도 그렇고 생활용품(?) 쪽을 잘 만드네.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어서 잘 덮고 꿀잠잘 수 있다. 에어차이나의 최고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그럼 뭐해 침대가 썩었는데

뒷편 수납공간에 헤드폰이 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지원되지 않는 일반 헤드폰이지만, 나야 어차피 노이즈캔슬링이 되든 말든 헤드폰은 잘 안 써서 몇 시간동안 저기 그대로 방치해뒀다.

중간에 자다 깼는데 아직 4시간 넘게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은 뒤에 급하게 모니터를 켜서 카지노 게임을 잠깐 할 때 처음 뜯었다. 시간 정말 더럽게 안 간다.

곧 밥 준다. Beef 요리를 시켰는데, 애피타이저부터 고기가 나오고, 샐러드와 곁들여 먹는 간단한 요리도 고기투성이다.

아니 이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는데.... (사실 고기요리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기내에서 먹는 생선보다는 이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서 시킨거임)

메인 요리는 뭐라고 해야되나... 약간 장조림용 고기를 크게크게 썰었다는 느낌? 스테이크 이런 거 절대 아니고, 식감은 굉장히 퍼석퍼석했다.

맛이 썩 좋지 않았고, 일단 결정적으로 앞에 애피타이저 먹으면서 너무 배가 불러버렸기 때문에 메인요리는 절반정도 먹고 고대로 반납.

후식은 과일과 케이크. 케이크에 계피 뿌리는 걸 진심으로 혐오하는 나는 한 입 먹고 그대로 반납해버렸고, 과일은 당연히 싹싹 비웠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과일 들어갈 위장은 따로 있어

사람들이 에어차이나 과일맛집이라고 부르는 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식사를 마치고, 자기 전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물을 한 병씩 나눠준다. 목마르면 이거 마시고 승무원은 부르지 말아주세염ㅋ 이런 표시인가. 아무튼 받자마자 그대로 처박아두고, 침대를 만들 준비 시작.

좌석을 끝까지 젖히면 이 정도 각도의 침대가 완성된다. 분명히 풀플랫이라고 생각했고, 또 당연히 풀플랫이어야 하지만 뭔가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튀어나와 있는 배게는 또 쓸데없이 딱딱해서 불편하고(좌석마다 하나씩 놓여있는 배게를 쓰면 되지 않냐! 하지만, 이걸 놓아버리면 배게 높이가 너무 높아진다. 결국 저 빌어먹을 원래 배게만 떼어버리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저게 탈착형이 아니어서...), 묘하게 기울어져서 자는 느낌이 있다.

그래도 5시간 정도는 안 깨고 잘 잤다. 상대적으로 불편했다는 의미이지 일단 누워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비행 피로는 절반으로 줄어드니까.

뭐 이불까지 까니까 나름 안락한 침대같네? 드디어 24시간 동안 눈을 붙이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몸을 눕히고, 정신을 잃었다.

근데 깨어나보니까 아직 4시간이나 더 가야 하더라(...) 졸립지도 않아서 다시 누워봤자 소용도 없고. 그래서 모니터 켜서 뭐가 있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바에 가서 이것저것 먹을 거 가져오기도 해 봤다.

모니터 좀 뒤적거려 봤는데, 노래는 죄다 중국 노래뿐. K팝? 그딴 거 없다. 걸그룹까진 바라지도 않아도 적어도 BTS 노래 정도는 실어주지 않을까 했는데, 기대는 바로 와장창.

영화? 전부 중국 영화에 한국어 자막은 당연히 없다. 그나마 볼만한 외화는 보헤미안 랩소디 하나인데... 난 이걸 영화관에서, 유투브에서, 그리고 뮌헨 오는 비행기에서 봤다. 라이브에이드만 벌써 열 번은 본듯.

결국 카지노 게임 조금 하다가 15분만에 5천달러 잃고 모니터 꺼버렸다. 기내 바나 돌아봐야지.

기내 바에 없는 게 없음ㅋㅋㅋㅋㅋ 살다살다 사과를 껍질채 던져놓는 항공사는 처음봤다. 저거 먹고 뒷처리는 어떻게하라고ㅋㅋㅋㅋㅋㅋ

컵라면, 쥬스, 물, 슈웹스, 초콜릿, 견과류 등 이런저런 간식들이 많이 있으니, 자다가 출출한 사람은 바 습격하면 된다.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바로 운영되는 곳이라 음식은 항상 차고 넘친다. 다 자느라 아무도 손을 안 대거든.

환승 게이트에서 어차피 액체류는 다 뺏기니까 그냥 초콜릿 하나만 슬쩍 주머니에 찔러넣고 자리로 돌아와 20분 정도 누워있다가...

드디어 아침식사 시간! 베이징 현지시각으로는 오전 2시 정도 되는 시간이어서 첫끼보다는 그나마 간소화된 밥이 나온다. 저 사과 바에 있던 거 깎아서 내온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음

중국식 닭요리와 밥, 그리고 적당한 야채. 고기에서 중국 향신료 냄새가 적잖게 풍기지만, 고수까지 잘 먹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걸...? 감탄하면서 밥을 흡입했던 기억이..

다만 사람에 따라서 심하게 호불호가 갈릴 수 없으니, 향신료에 자신 없다면 western style로 주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식후에는 깔끔하게 보이차(푸얼차라고 말하면 더 잘 알아듣는다)로 마무리. 식후주? 그딴 거 없다. 배불러 죽겠는데 술 때려박다가 몸만 상하지...

작년 12월에 타이베이에서 돌아올 때, 승무원이 주는대로 술 받아마시다가 인천 내려서 매우 고생한 기억이 있다. 서울역 오는 열차 안에서 계속 생수 받아서 마시는데도 목은 마르고... 속은 거북하지 화장실은 가고싶지... 승무원 누나 내가 그렇게 술꾼으로 보였어요? 그 뒤부턴 되도록이면 사리는 편.

중국은 모름지기 차의 본고장.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차를 마시면서 비행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그리고 가성비 좋은(?) 경험이다. 특히나 보이차처럼 타 항공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 위주로..

그리고 드디어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3터미널에 착륙한 비행기. 하지만 너에게는 아직 3시간의 경유와 인천까지 가는 비행이 남았지

1월 24일. 중국은 춘절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유난히도 그날 아침의 해는 밝게 떠올랐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은 떠오르는 새해를 담으면서 희망을 기원했겠지. 근데 코로나 X발아

비행기 너머로 떠오르는 해.

미세먼지도 없어서 해뜨는 게 더 선명하게 보였다. 베이징엔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며^^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춘절이라 그런지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고(단거리 비즈니스 클래스가 15석 넘게 찰 정도였으니..), 바람을 제대로 받은 비행기는 1시간 30분만에 인천 도착!

드디어, 길고 길었던 2020년 겨울 유럽여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코로나 안 걸리고 잘 살아있으니 다행이지 뭐.

이제 당분간은 국내여행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같은 여행지들을 찾아나가는, 의미있는 작업이 되겠지? 그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