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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Germany/뮌헨&근교 Munich&Outskirts

20200123. 뮌헨 공항 랜드사이드에서 노숙하기

잘츠부르크에서 밤늦게까지 관광을 마치고, 다음 날 정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뮌헨 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 비행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해서는 오전 9시까지는 뮌헨 공항에 도착해야 했고, 이러려면 잘츠부르크에선 적어도 오전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 괴랄맞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함께 갔던 친구는 귀국하는 게 아니라 빈으로 넘어가는 상황이어서, 잘츠부르크가 되었건 뮌헨이 되었건 하루는 무조건 혼자 숙소를 써야 하는 상황이어서, 100% 도미토리룸 당첨. (아직 혼자 호텔 2인실을 쓸 만큼 형편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다)

캐리어는 두 개지, 숙소를 잡아도 새벽녘에 나와야 하지, 심지어 공항까지 가는 차비도 만만치 않지(11.6유로)... 결국 그냥 공항노숙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저녁 어스름할 때 잘츠카머구트에서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호텔에 맡겼던 짐을 찾고, 다시 잘츠부르크에서 뮌헨 공항까지 2시간 넘게 이동했다. 기차에서만 총 4시간 30분동안 앉아있던 셈.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뮌헨 시내까지 가나 뮌헨 공항까지 가나 요금이 똑같이 19.9유로였다. 즉 뮌헨 시내에서 하룻동안 머무르지 않고 바로 공항으로 떠날 경우, 시내에서 공항까지 S반 요금인 11.6유로를 아낄 수 있는 것. 한두푼도 아니고 1만5천원에 육박하는 돈이라면 혹할 만하지 않은가?

거기에 뮌헨 공항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노숙하기 좋은 공항'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어서 알고보니 에어사이드 한정으로 좋은거였다 그냥 질러보기로 했다. 결국 뮌헨공항행 S반 막차를 타고 밤 11시 40분에 뮌헨공항 터미널에 도착!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니 당연히 공항 카운터에는 직원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몇 명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똑같은 목적으로 공항에 온 여행객이거나 순찰 도는 공항경찰이다.

그 넓은 공항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썰렁하다 못해 무서울 지경. 다만 공항경찰이 수시로 순찰을 돌기 때문에 소매치기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겨울 기준으로 적당히 난방도 들어와서 하룻밤 새기엔 불편함이 그닥 없어보이는 상황.

FIDS에는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수많은 항공편들의 정보가 안내되어 있다. 저 수많은 비행기 중 한두개 빼고는 죄다 루프트한자 여긴 독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아부다비 등 몇 개 도시를 제외하고는 오전시간 대의 비행기는 전부 유럽 역내를 오고가는 항공편이다.

전광판을 살피다 보면 뉘른베르크 가는 비행기도 가끔 보이는데, 뮌헨 중앙역에서 ICE로 1시간, RE로도 1시간 40분이면 가는 동네에 왜 항공편 노선이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대전 가는 느낌이잖아 그야말로 뜨면 내려야 하는 노선 아닐까.

어떻게든 전광판 보면서 시간 좀 때워보고...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슬슬 잘 거처를 정해본다. 뮌헨공항 2터미널 청사 안에 들어와 출발층으로 올라오면, 이렇게 의자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눈 붙이기 좋다.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설들이 심야시간엔 작동을 멈추기 때문에 소음공해도 거의 없는 편.

나는 이곳에 자리를 깔고 한국에서 출국할 때 가지고 온 책을 읽으면서 두 시간 정도를 때웠다. 근거리에서도 누군가가 잠을 청하고 있었고, 공항경찰도 매일매일 이런 사람들을 보아 적응해온 탓인지 노숙자(?)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충 책을 읽다가 핸드폰을 봤는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충전기 콘센트를 찾아 뒤적거리기 시작했는데, 출발층에선 어딜 뒤져도 콘센트를 찾을 수 없었다. 30분 동안 양손에 캐리어 끌고 삽질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콘센트를 위해 결국 1층의 묘한 물결의자(?)로 내려와 나머지 밤을 보냈다. 벤치가 곡선이라 누워서 자기도 불편하고, 핸드폰을 하려고 했더니 충전기 줄이 짧은 걸 가져와서 또 자세가 어그러지고(...) 심지어 콘센트 중 몇 개는 불량이라 충전이 되지도 않아서 전기 들어오는 콘센트를 찾아 여기저기 전전하고...

누가 뮌헨공항 노숙하기 좋다고 했냐 에어사이드로 들어가면 프리미엄 공항노숙을 가능케 하는 캡슐호텔까지 있다고 하지만, 랜드사이드에서의 노숙은 영 좋지 않았다. 결국 그냥 밤샘크리...

공항노숙은 시간이 더럽게 안 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거북목을 뻗어 유투브를 한참 보고 나도 시간은 짧으면 30분, 길어봐야 1시간이 지나 있으며,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시계를 보면 꼴랑 20분이 지나가 있는 일은 흔하다. 갖고 간 책? 2시간~3시간이면 다 읽는다. 정말 할 짓이 없어서 명상까지 해도 체크인 시간이 절대 올 것 같지 않다.

결국 버티다 버티다 못해 양손에 캐리어 짊어지고 공항 바로 맞은편에 있는 대형마트 구경이나 갔다. 공항답게 시내의 동일 브랜드 매장보다는 전반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마트 사이즈는 이마트 뺨치는 수준으로 커서 그나마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시간 때우기 좋았다.

주류, 하리보, 면도날, 밀카 등 눈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가격표를 외울 정도로 꼼꼼히 구경하고 나가니까 드디어 해가 뜨는 오전 8시(...) 1시간 30분만 더 버티면 드디어 체크인 시간이었다. 마트를 나와 정말 꾸역꾸역 시간을 때워서, 드디어 보딩패스를 받아 출국수속 밟기 성공.

공항 안에서만 순전히 12시간 30분을 버팅긴 후,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베이징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공항 노숙. 인생에 있어 한번쯤은 해봄직한 경험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두 번 하는 건 절대비추. 노숙을 해도 차라리 인천공항에서 하지, 타지에서는 정말 쉽지 않다. 특히 랜드사이드 쪽에서라면 더더욱.

나야 하루치 숙박비 30유로+공항까지 오는 교통비 11유로가 너무나도 아까웠기 때문에 택했던 선택이긴 하지만, 뮌헨 시내에서 출발해 어차피 교통비는 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친구와 함께 와서 방값이 반으로 줄어드는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편안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다 오시길...

뮌헨에서 베이징까지 이용했던 에어차이나 CA962편 포스팅은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