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삼학도. 세 마리의 학이 떨어져 세 개의 섬을 만들었다고 삼학도라 이름붙여진 곳인데, 지금은 작은 다리를 건너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난영기념관, 삼학도공원과 더불어 이곳에는 목포 실내 가볼만한곳인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시내버스 이용 시 삼학도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해 걸어들어오면 된다.
실내에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어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오기 좋은 목포의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규모가 제법 컸다.
관람료는 없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라는 점 참고하자! 월요일에 목포 오면 참 할 거 없다.
전시동과 컨벤션동이 있는데, 관람객의 관심을 끌만한 대부분의 것들은 왼편에 있는 전시동에 있다.
이름이야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이지만, 실제로 둘러보면 여긴 그냥 '김대중'기념관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긴 정치인의 일생을 기념하는 공간인 만큼, 둘러볼 것도 공부할 것도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퍼레이드 행사 때 쓰던 캐딜락 승용차가 입구 옆에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차 내부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게 되어 있다.
전시동 입구로 들어가보자!
별도로 짐을 둘 수 있는 로커는 없지만, 1층 인포메이션 데스크 한구석에 살짝 가방을 놓고 돌아볼 수 있다.
1층에는 카페와 기념품샵이 있고, 전시공간은 2층에 있다. 기념품샵에서 파는 건 뭐 어딜 가든 똑같듯 텀블러와 책갈피 등등. 별로 구매욕을 자극하지는 않아서 바로 pass.
기념품샵 맞은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몰고 다니던 차를 전시해 두었다. 캐딜락과 마찬가지로 차 안에 앉아볼 수는 없다. 간혹 서울에 모범택시로 돌아다니는 그 차종 맞다.
관람 마친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1층에 있다. 딱딱했다. 이것 역시 대통령이 선물받았나 업무 볼때 썼나 아무튼 김대중과 관련된 물품이라고.
이제 2층으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둘러보았다.
2층 전시실로 들어가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피규어(?)를 볼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만지거나 플래시 터뜨려서 찍으면 안 된다.
노벨상 받으러 갔을 때 김대중 내외가 입었던 옷이 전시되어 있고
노벨평화상 상장과 메달 역시 전시되어 있다. 복제품이 아니라면, 노벨상 메달과 상장을 실물로 본 건 오늘이 처음. 꽤나 신기하게 생겼다.
김 전 대통령의 별명인 인동초를 따 오슬로에 피어난 인동초라는 표현이 인상깊었다.
뒤편 스크린에는 김대중이 노벨상을 받으며 연설을 했던 모습을 상영하고 있다. 1~2분쯤 되는 짧은 영상이니 시작하는 걸 기다렸다가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옆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여기는 '김대중과 노벨상'이라는 테마로, 노벨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본인은 김대중에 관심이 있어서 이곳에 왔지, 알프레드 노벨의 생애까지 보러 온 게 아니므로 여긴 슥 훑어보고 바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그나마 김대중과 관련이 있는 것은 이 스크린 정도...? 근데 이것도 매우 간략하게만 설명되어 있으므로, 옆 전시관에서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정치인 김대중이 걸어왔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워낙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사람인지라, 그가 걸어왔던 발자취가 곧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의 발자취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대중의 고향은 신안군 하의도. 농사일을 하다가 목포로 나름의 상경(?)을 하여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김대중의 숙명의 라이벌, 김영삼과는 사뭇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나 보다.
그랬던 그는 독재시기 한국 야당의 떠오르는 샛별로 부상하게 된다. 1964년 필리버스터에서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거물급으로 성장한 야당 정치인 김대중. 그는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박정희와 맞붙게 된다.
김대중의 대통령 선거유세 장면을 올드한 티비로 엿볼 수 있다. 박정희나 김대중이나 당대 한국을 휘어잡는 한 가닥 하는 정치인들이었으니, 그들의 유세에 엄청난 군중이 몰린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박정희 입장에서 똥줄이 타지 않았겠는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은 되어야겠는데, 김대중이라는 너무나 큰 벽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각종 정치공작이 동원된다.
박정희 이후에도 신군부의 탄압 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긴 김대중. 다섯 번 죽다 살아난 걸 보면 참 명줄도 질긴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낀다.
5번의 죽을 고비 중, 한국 정치사에도 큰 분량을 차지하는 김대중 납치 사건(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작품), 그리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신군부 전두환 정권의 작품)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1973년 터진 김대중 납치사건. 중앙정보부가 남의 나라에 버젓이 들어가 납치극을 벌였던 이 사건은 한동안 한일 간 외교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그 유명했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 역시 김대중과 관련이 있다. 이쯤되면 김대중 없이는 한국 현대사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 실제로 김대중 김영삼 둘은 한국 정치사, 특히 민주화와 관련된 역사를 지탱하는 두 기둥뿌리였다. 참 대단한 족적을 남긴 양반들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광주사태의 촉발자라는 죄목으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잡혀들어간 김대중. 무려 사형 판결을 받고 또 수감된다. 박정희 때도 그랬고 전두환 때도 그랬고, 김대중을 살린 건 미국의 개입이라고 봐야 한다.
옥중 생활을 재현한 작은 공간. 6년여간의 옥살이 후 사면복권되어 결국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때까지 김영삼과는 숙명의 라이벌
자신을 잡아 가두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던 그 사람들을 통크게 용서한 김대중. 그가 한국 정치계의 거목으로 남아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용서 때문일 것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니 정상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보복이 이루어질텐데, 그걸 용서했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걸 해낸 사람이 김대중이다.
김대중이 남겼던 명언들을 뒤로 하고, 이제 마지막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국민의 정부가 남긴 유산들을 간단히 둘러볼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국내정치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다.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이것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 정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던 국민의 정부.
물론 공과 과 모두 있었겠지만,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이후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바깥쪽에 전망대도 있던데, 잠시 들렀다가 건물을 빙 돌아 밖으로 나갔다. 별 기대 없이 왔는데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한국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어 만족스러운 방문이었다.
겨울, 아니면 여름. 덥고 추운 곳을 피해 실내에 들어와 한국정치에 대해 약간이나마 고민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인 것 같다. 이제 고하도로 가는 61A번 버스에 몸을 싣고, 목포신항으로 넘어간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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