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나와 발걸음을 향한 곳은 명확했다. 목포대교를 건너 신항만에 거치되어 있는 세월호를 만나기 위해, 하루에 여섯 번 운행하는 시내버스 61A번에 몸을 실었다.
자동차전용도로인 목포대교를 건너 목포신항이 위치한 고하도로 넘어가는 시내버스는 61A번과 좌석버스 900번 단 두 노선뿐.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이 위치한 삼학도에서 고하도를 잇는 버스는 61A번이 유일하다.
목포 시내버스 61A번의 시간표. 기점 기준이며 삼학도입구 정류장까지 오는 데는 약 30분이 더 걸린다.
시내버스 외부에는 A 표시 없이 그냥 61번이라고 찍혀 나오므로, 얼추 시간 맞춰서 61번이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냥 그거 타면 된다. 고하도 행선판을 따로 붙이고 다니며, 정 불안하면 기사님께 고하도 가냐고 여쭤보자.
버스정류장이 목포신항 바로 앞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목포대교 건넌 후 첫 정류장인 '고하도입구'에서 하차해 1km 정도 걸어야 한다. 다만 눈치 빠른 기사님이라면, 혹은 미리 신항만 쪽으로 간다고 언지를 주면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자마자 내려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다.
61A번, 그리고 좌석버스 900번의 정확한 시간표는 http://bis.mokpo.go.kr/mp/p/bisRouteInfo.view 에서 확인하자.
목포대교를 넘어 달리는 시내버스.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신항만까지 시내버스 타고 가는 법이 어렵지는 않으나, 목포라는 소도시를 뚜벅이 여행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으므로 시내버스 수요가 적은 건 당연할수도. 혹시라도 이 포스팅을 보는 사람이라면 시내버스 여행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라. 하나도 어렵지 않다.
시내버스의 왼쪽 차창 너머로는 유달산의 모습이 보인다. 낮에 보는 산과 바위의 모습은 또 색다르다.
목포대교를 넘어 고하도 케이블카 스테이션 방향으로 좌회전하자마자 차를 세워주신 기사님. 목포신항에 간다는 걸 빠르게 눈치채신 모양이다.
61A번 버스에 여행자가 탄다면 목적지는 십중팔구 둘 중 하나. 세월호가 위치한 목포신항 아니면 목포해상케이블카 고하도 스테이션이다.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케이블카 타려고 고하도입구에 내리진 않을 테니, 결국 여기서 내리는 여행객은 목적지가 단 하나뿐이라는 것. 조금이라도 덜 걸으라고 배려해주신 기사님께 감사드린다.
교차로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노란 리본들.
한적한 길을 따라 목포신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펜스에는 무수히 많은 노란 리본과 띠가 걸려 있다.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시민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매달았을 것이다.
샛노란 리본으로 수놓아진 길을 몇백 미터쯤 더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본 하나하나에 적힌 글들을 읽으면서 가면,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아팠던 세월호 참사였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다.
'기억할게'라는 선명한 글씨. 결코 가볍게 둘러볼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리본 하나로 증명할 수 있다.
진실규명을 외치고 있는 현수막을 뒤로 하면, 목포신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신분증을 지참한 자에 한하여, 13시부터 17시까지 항만 안쪽으로 들어가 세월호를 만나볼 수 있다.
초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교부받아 입장하는 시스템. 국가시설인 항만 안쪽으로 접근하는 것이므로, 보안절차는 철저하다. 가족으로 묶여 있다 하더라도 방문자 모두의 신분증이 필요하니, 반드시 챙기자.
실물 신분증만 인정되며, 사진으로 찍었건 온라인으로 뭘 하건 절대 입장할 수 없다. 국가시설인 만큼 그러려니 넘어가자.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에도 잔뜩 수놓아져 있는 노란 리본들. 여기서부터 아 세월호구나 하는 느낌을 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관 시 지켜야 하는 유의사항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면 유의사항과 어긋날 만한 행동을 하게 될 일은 없다. 기본적인 사항들을 나열해 두었던 유의사항.
항만의 한켠에는 세월호 선체에서 끌어올린 화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몇 년을 소금기에 쩔었던 상태에서 강제로 끌어올려졌으니, 적재화물 상태는 당연히 심각하다.
그 모습을 여과없이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이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참사였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선체. 두 눈으로 보니까, 정말 큰 배였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선체의 대부분은 녹슬어 있는 상태. 2014년에 침몰한 이후 몇 년 동안을 차가운 서해바다 안에서 머물렀으니, 녹이 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세월'이라는 배의 이름만큼은 녹슬지 않은 채 남아있다.
배의 후면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새겨진 부분만 용케 녹슬지 않고 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참 미묘하다. 잊히지 않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인 것일까.
2014년 4월 16일. 아마 죽는 날까지 내가 이날의 기억을 잊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세월호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날의 기억을 평생 안고 갈 것이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어놨던 일이었다.
그날 아침 평소와 똑같이 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교실에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내가 참사를 처음 알게 된 때였다.
집에 가서 TV를 틀었고, 모든 채널은 긴급속보로 세월호 참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거의 1년 동안 신문과 뉴스의 메인 소식에서 세월호는 빠지는 일이 없었고, 무너진 국가 시스템의 관리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던 정부와 정치권 덕분에 몇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진실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이 배가 4월 15일 저녁 인천항을 출항할 수 있었던 것에서부터. 어쩌면 한국에 들어와 정식 운항을 할 수 있었던 것부터 국가 시스템의 오작동은 시작된 것이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침몰 후의 구조작업. VTS와 해경 간의 철저한 소통 부족 덕분에 구조작업은 이미 자력으로 탈출한 사람 건져내기에서 머물러 버렸다. 배 안에 갇혀있던 수많은 승객들에게 탈출하라는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그때의 구조단이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말 그대로 '생존자'였지, '구조자'가 아니었다. 비상시를 대비한 제대로 된 매뉴얼 하나 없는, 매뉴얼이 있다 해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세월호 참사는 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만들었다. 국가 시스템이 단 하나라도 정상작동했으면 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더라도 훨씬 많은 사람이 생존했을 것이다. 이래도 세월호 참사가 단순 교통사고인가.
항상 똑같다. 죽은 사람들만 억울한 셈이다.
20분 정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신항만을 둘러보고, 다시 신분증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한켠에는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의 조속한 귀환을 희망하는 단상이 있고.
다른 한켠에는 유가족들이 버텨내야 했던 긴 시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이 걸려 있다.
아직까지 4월 16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만든 작은 노란 배 조형물 역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기리는 장소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세월호 참사를 이곳에서만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곳도 또 없을 것이다.
그날을 기억하려는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목포신항에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부디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아,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대형참사가 재발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목포신항이다. 목포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를 이곳으로 잡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신한다.
이제 목포신항 버스정류장에서 900번 버스를 기다려 뭍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 갓바위 보는 건 생략하고, 그대로 목포역으로 직행하면서 1박 2일 동안의 짧은 목포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목포 포스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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