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18코스를 쭉 따라 걸어와, 드디어 구제주 시내에 도착하기 직전 넘어야 하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사라봉, 그리고 그 옆에 살포시 붙어있는 별도봉.
올레길 정규코스는 별도봉을 스쳐지나가 사라봉 정상을 찍고 시내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이지만, 원한다면 체력이 남아있다면 별도봉 정상도 찍고 돌아올 수 있다.
이미 삼양해수욕장에서부터 땡볕을 이기고 여기까지 걸어온 나에게 남은 체력이 있을리가 없잖아?
그래서 그냥 올레길 표식만을 쫓아 별도봉은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차는 들어오지 못하는, 온전히 사람과 자연만을 위한 길이 나 있는 곳.
벌레와 상당히 많이 조우하게 되는 길이지만, 진드기가 없는 거에 감사하며 앞으로 쭉 걸어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제주항의 모습이 살짝 보일듯 말 듯 한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시원하게 전망 다 들어오니까 실망하진 않아도 된다.
올레길 표식을 따라 별도봉을 스쳐지나가고...
울창한 녹음을 통과해나간다.
오름을 '스쳐지나간다'고 썼지만 경사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상당한 업힐과 다운힐을 중간중간 만나게 되니, 체력 방전인 상태로 왔다가는 큰코다치기 아주 쉽다는 말.
언덕을 올라가니 옆으로 제주항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평소에는 보기 쉽지 않은 커다란 배들이 항구에 들어와있는 모습을 보니까 뭔가 신기했음...
항구 바로 옆임에도 불구하고 물빛은 미치도록 예뻤다.
봄 가을에 오면 선선한 바람 쐬면서 몇십 분은 그냥 앉아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날이 너무 더워서 FAIL.
목포와 제주 사이를 오가는 대형 여객선 퀸메리호가 입항하는 모습을 운 좋게 담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터진 이후로 여객선에 대한 불안한 이미지들이 많이 떠오른다. 모쪼록 안전, 또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기를..
대형 선박 네 척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앞에 두 척은 딱봐도 화물선처럼 생겼는데, 선적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약간 아쉽기도.
타이밍 잘 잡고 별도봉 근처 올레길 18코스로 올라온다면 활발한 항구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항구 옆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예쁜 물빛을 뒤로 하고, 별도봉을 지나 사라봉 쪽으로 진입한다.
봉우리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솔직히 처음에 조금 쫄았는데, 막상 걸어올라 보니까 그렇게까지 힘들고 하는 느낌은 별로 없었음.
제주 시가지로 진입하는 마지막 관문인 사라봉. 걷느라 고생 많이 했다!
제주도의 흔한 오름처럼 숲을 끼고 길이 쭉 이어진다.
이런 거 볼 때마다 도민들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발에 채이고 널린, 수도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런 모습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는지 바로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살짝 가파른 길을 약 10분 정도 걸어올라가면 사라봉 정상부에 도착할 수 있다.
동네 주민들이 올라와 쉬고, 운동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곳.
여행객의 시선은 이곳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제주 시내의 전망으로 쏠린다.
저 멀리 살짝 보이는 제주국제공항의 전망과 탑동 시가지의 모습.
날씨 좋고 미세먼지가 없어서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유일한 장점 탁 트였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음.
줌 당기면 조금 더 시원한 뷰를 볼 수 있다.
서울과 달리 고층빌딩이 없어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던 제주 시내의 모습. 아파트곽에 익숙해진 육지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한(?) 그런 풍경 아닐까.
정상부에서 사진 좀 더 찍다가, 다시 울창한 숲 산책로를 따라 시내 방향으로 내려왔다.
도민 친구 만나서 신나게 노느라 오늘의 관광 일정은 이걸로 대충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놀고 있다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결국 밤에는 6명이 한자리에 모여 놀았다는...
아무튼 우연히 같은 과 친구들 여럿이 한자리 그것도 제주도 에 모이게 된 것도 참 신기하고, 초면인 사람들도 있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것도 참 신기하고...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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