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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aiwan/타이베이 Taipei

생각지도 못한 보물, 타이베이 맹갑청산궁(몽가칭산공, Monga Qingsan Temple)

Taipei Day 2: 맹갑청산궁-용산사-보피랴오리스지에-단수이-용산사 야경

대만에서의 둘째날 아침. 어딜 갈까 구글맵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사원 하나가 있었다. 'Monga Qingsan Temple'. 가이드북 따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은 생소한 이름. 평점이 좋길래 냉큼 가봤다.

숙소가 있는 시먼에서 걸어서 5분~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맹갑청산궁. 걸어가는 길에도 곳곳에서 타이베이 전통 절과 사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교회가 차지하는 위상 정도로 보면 딱 맞겠다.

맹갑청산궁 가는 길에 찍은 시먼의 아침 풍경. 건물들이 꽤 낡아보인다.

맹갑청산궁 들어가는 골목의 입구. 길 입구부터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놓은 걸 보니, 보통 사원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부터 이미 잘 왔구나! 싶었지.

2020년 초에 대만 총통 선거가 있다고 한다. 시내 곳곳에 후보들 선전 포스터가 걸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무난하게 차이잉원 현 총통의 재선을 낙관한다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왼편을 바라보면 등장하는 맹갑청산궁의 입구. 이른 아침에 가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덜 유명해서 그런 건지, 관광객의 모습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출근하는 현지인들이 잠시 들러 신에게 아침 인사 하고 다시 총총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정도. 잘 왔구나 No.2.

정문을 통과하면 안쪽으로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총 3층 높이의 규모를 자랑하는 맹갑청산궁. 입구에 관리원 분이 계셨는데, 내가 들어가던지 말던지 1도 신경쓰지 않는 눈치라 그러려니 하고 여기저기 사진찍으면서 돌아다녔다. 후에 반전 있음

무언가 도교스러운 얼굴과, 도교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는 신의 모습. 이거 뭐 패키지로 온 게 아니니까 관련된 정보가 있어야 말이지...

근데 또 생각해보면 꼭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고 유럽 성당 돌아다녀야 하나? 그냥 이국적인 문물 둘러보고, 예쁘면 다인 거지. 알면 좋지만 무조건 공부하고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부담없이 돌아다녔다.

벽에 새겨진 수많은 글씨들. 한자를 모르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그냥 그림이랑 다를 바가 없다.

오호. 건물 안쪽으로 꽤나 깊숙한 공간이 있고, 심지어는 작은 실내정원까지 있다. 여전히 관광객 없는 건 매한가지. 장소 상당히 잘 골라서 왔지 싶다.

분명 도교 사원인데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대만에서는 이게 일반적인 모습이란다. 곧 갈 용산사에서도, 어제 갔던 즈난궁에서도 모두 볼 수 있었던 풍경.

다름을 포용하고 인정할 줄 아는 타이베이의 종교관. 이게 참 당연한 건데 잘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타이완에서는 종교적 형상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무례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정말 근접샷 여러 컷 찍었다.

근데 왜 혓바닥 내밀고 계세요...? 메롱 당하는 기분이어서 뭔가 좀 묘했음. 다들 얼굴이 시꺼먼 걸 보니, 아마도 인간의 사후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자 않나 싶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천왕상 비슷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소원 비는 데 쓰는 반달 모양의 나무조각들. 소원을 빌고 세 번 연속으로 똑같은 모양이 나와야 한다나 뭐라나. 각 잡고 빌려면 정말 하루종일 던져야 할 수도 있겠다.

관광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는 정말 간절하다면 하루종일 시도해도 뭐라 할 사람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사실 아직 딱히 빌고 싶던 것이 없는 나는 과감히 패스.

맹갑청산궁의 화려한 조형물들. 저런 거 다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

뒤를 돌면 보이는 중국식 사원 지붕. 한국 절보다 훨씬 화려한 마감이 된 것 같다. 구성의 화려함만 따지자면 중국>한국>일본 순이랄까. 근데 뭐 지나치게 화려한 것도 썩 예뻐 보이진 않는단 말이지..

시먼딩의 흔한 건물 사이를 비집고 세워진 맹갑청산궁. 뭐 당연히 맹갑청산궁이 먼저 생기고 주변의 빈틈을 건물들이 메꿔나간 게 틀림없겠지만.

시내 한복판에 전통 사원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언제봐도 신기하다. 사실 한국이 좀 유별나기도 하지만. 분명히 토속종교는 불교인데, 지금은 온통 기독교 천국인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두 개 층을 올라가 3층으로 가면 사원의 지붕과 타이베이 시내 건물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이곳에서 한적하게 아침 휴식을 취하다가 가기 좋았다.

맹갑청산궁의 3층. 도교 사원에서는 층수가 높아질수록 모셔진 신의 위계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 3층에 모셔진 신은 가장 위대한 존재로, 뭐 자본주의식으로 말하면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셈이다.

예쁜 지붕 모습 한 컷 더 담고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아까 그 관리인 아저씨가 날 보더니 갑자기 중국어로 뭐라 솰라솰라 하신다. 내가 알아들을 턱이 있나. 뭐 잘못했나...? 싶었는데,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한 마디. "쭝궈런?"

"한궈런" 이라고 대답하니 아아! 하시면서 핸드폰을 꺼내 구글 번역기를 돌리신다. 알고보니 맹갑청산궁의 해설사 분이셨던 것. 아니 처음에 들어갈 땐 뭐하시고 다 나오는 사람을 붙잡으시는데ㅋㅋㅋㅋㅋ

뭐 암튼 해설사 아저씨가 발번역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 이것저것 설명해주신 덕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장면들을 머리에 박고 올 수 있었다.

덕분에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나 똑같이 내 시선을 따라오고 있는 신기한 그림도 보고 근데 이거 좀 무서웠음

무심코 지나쳤던 맹갑청산궁의 지붕 모습에도 눈을 돌릴 수 있었으며,

지갑 안에 넣어두고 다니면 행운이 깃들 수 있다는 부적까지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청산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게 도와주신 해설사 분께 감사할 따름.

이런 것도 평소 관광객이 잘 오지 않는 곳에 가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아니었을까. 용산사 같은 데서 이런 해설은 꿈에도 못 꾸겠지

1856년 타이베이 시에 퍼진 전염병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맹갑청산궁의 역사에 대해서 천천히 익혀가며 마지막으로 사진 하나 박고 나왔다.

다시 거리를 터벅터벅 지나 시먼딩 메인 거리 쪽으로 이동 시작! 저편에서는 한창 출근을 준비하는 타이베이의 오토바이 부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서 했던 생각. 가이드북에 있는 곳만 찾아 돌아다닐 필요는 없겠구나. 물론 타이베이를 '대표하는' 여행지들이야 가이드북에 다 실려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도시의 온전한 '속살'까지 모두 기대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정말 현지에 가서, 주변의 장소들을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 들이밀어 보는 과정 속에서 진짜 그 도시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아 보이는 도시들의 매력은 직접 걸어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다.

슬슬 시동을 거는 오토바이 부대를 지나, 오늘의 두 번째 행선지인 용산사로 이동한다. 용산사 포스팅은 https://travelife-chan.tistory.com/99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