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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aiwan/타이베이 Taipei

대만 민주화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곳, 2.28 화평공원을 산책하다

오늘은 하루종일 대만 정치사 공부하러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총통부-2.28공원-중정기념당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정치충 대만족 코스.

대한민국 현대사를 쏙 빼닮은 대만의 현대사이기에, 더욱 공감하며 그 발자취를 따라다닐 수 있다. 광주, 부산-마산 등 다양한 장소에서 굵직한 민주화투쟁이 이뤄진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핫스팟이 죄다 타이베이에 몰려있어서 관광이 더 쉬운(?) 장점도 있다.

총통부와 2.28화평공원(2.28기념관이 안쪽에 있다) 사이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중간중간 예쁜 녹지공간이 등장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걸어가는 것을 추천하겠다. 길이 죄다 평지라 안 힘들다.

가던 길, 공원 한복판에 있던 화이트 테러(백색테러) 추모비.

추모비 옆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공원. 여기 풍경이 너무 예뻐서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즐겼다.

앉아서 한 15분 쉬었나? 공원에 있는 내내 아무도 안 왔다는 건 함정. 나만의 휴식공간을 갖고 싶을 때 오면 딱 좋을 곳이다.

이런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 안 유명한데 솔직히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어지간한 관광지만큼 예뻤다.

스케일 작고 사람 없는 걸 선호한다면 총통부 맞은편 작은 공원을 찍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게 문제

공원을 나와 드넓은 대로를 가로지른다. 타이베이에서 아마 가장 폭이 넓은 도로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길이 컸다.

횡단보도 정중앙에서 총통부 사진을 깔끔하게 찍을 수 있다! 다만 초록불 몇 초 남았는지 정도는 확인하고 카메라 들이대는 게 좋다. 한참 찍고 있는데 빨간불로 바뀌면 답이 없어진다. 온갖 눈초리 받는 건 덤

이윽고 도착하는 2.28 화평공원. 우리나라의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원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원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돌아다니기 좋다.

가벼운 피크닉을 나온 현지인들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곳은 장제스 국민당 정부의 독재에 맞서 시위를 하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공원이기 때문에 음주와 고성방가 등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사실 어느 공원에서나 음주와 고성방가는 하면 안되잖아

2.28화평공원을 상징하는 탑. 저 멀리 총통부의 모습이 보이는 게 포인트.

대만의 2.28 사건은 한국의 5.18 혹은 4.3 사건과 유사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대만 사회를 구성하는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갈등이 터져나온 사건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국공내전 이후 타이완으로 패퇴한 국민당 인사(이들을 외성인이라고 부른다)가 주요 고위공직을 싹 쓸ㅇ어가면서, 본디 타이완에 거주하고 있던 본성인을 차별하는 행위가 만연했던 당시의 대만. 이들의 주 수입원 중 하나는 전매제가 실시되고 있던 담배사업이었다.

즉 국영기업 말고는 담배를 생산하지도, 팔지도 못했던 것. 이런 상황에서 밀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당연히 본성인들은 알게 모르게 담배를 몰래 판매하고 있었고(이들의 주요 생계수단이기도 했다), 1947년 2월 27일 단속반원이 한 노인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면서 사건이 터진 것.

대망의 2월 28일. 타이베이 시민들은 정부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지만, 국민당 정부는 계엄령 선포로 화답한다. 5.18의 낌새가 슬슬 보이는데 안 그래도 억울한 본성인들은 빡돌았겠지? 강경진압은 더욱 과격한 시위를 잉태하게 되었고, 결국 경찰은 기관총 발포로 시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스토리는 5.18과 정확히 같아진다. 시민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경찰서를 습격, 무기고를 탈취하고 방송국을 점령해 요구사항을 발표한다. 단순히 담배 전매제 폐지뿐 아니라 대만 정치제도의 개혁, 인권 신장을 부르짖었다는 점에서 이들을 민주화 투사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다.

국민당 정부는 애가 탄다. 기관총 좀 난사하면 진정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위가 격화되네? 장제스는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군을 데려와, 완전히 시위대의 씨를 말리기로 결정한다. 열흘 동안 열심히 시민들에게 총질해대면서 싸운 결과, 3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몇 달이 지난 5월에서야 비로소 안정화 국면에 잦아들게 된다.

장제스는 고분고분한 통치로 이들을 다스릴 수 없겠다는 판단 하에, 1) 주동자를 싸그리 찾아내 사형. 2) 2.28 사건의 대대적 은폐 3) 무려 38년 동안 타이완 전역에 계엄령을 유지하는 희대의 뻘짓을 하게 된다. 38년 계엄령은 한국의 어떤 독재자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장제스는 죽을 때까지 계엄령을 풀지 않았으며, 아들인 장징궈가 후임 총통으로 자리잡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규명과 재조사, 계엄령 해제가 모두 이뤄졌다고... 어떻게 보면 박정희 전두환보다 훨씬 악랄한 놈이다.

대만 최악의 블랙 히스토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2.28 사건. 공원 안쪽에는 2.28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 민주화 역사의 상당한 유사성 덕분에, 이곳에서는 제주 4.3 단체와 연대하여 전시를 열고 있었다. 의미있는 장소에서의 의미있는 전시다.

선명하게 보이는 '4.3 JEJU'. 추후 5.18과도 활발한 연계가 이뤄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기념관 맞은편에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레논 월을 만들어 놓았다. 대만에게 있어 홍콩사태는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다.

차이잉원의 선거 구호처럼, '홍콩의 오늘은 대만의 내일'이기 때문. 일국양제라는 불안한 동거는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장제스나 중공놈들이나 결국 그놈이 그놈.

대만인들이 홍콩인과 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28기념관 앞을 둘러보고, 다시 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탑이 상징하는 바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탑 안쪽에는 직접 손을 맞대어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져 있다. 역시 손을 맞대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그냥 한 번 터치만 하고 나왔다.

가이드가 없으니까 이런 점은 불편하구나 싶으면서도, 과연 패키지여행으로 올 때 여길 들를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도.

대만에서는 2.28사태와 관련한 진상조사와 사회적 합의가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이념적 논쟁으로 점철되고 있는 5.18과 4.3 등의 시민운동이 하루빨리 명확하게 정리되었으면 한다.

이래저래 한국 현대사랑 같이 생각해봤을 때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2.28화평공원이다.

공원 맞은편에 엄청나게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어서 뭔가 하고 들어가봤더니 대학병원(...)이었다. 덕분에 언제나 택시가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으니, 화평공원 본 다음에 택시로 이동할 사람은 여기 가면 될 것 같다.

나는 또다시 걸어서(!) 장졔스를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으로 이동했다. 15분 정도 걸리는 길지 않은 코스였다.

그래도 걸으니까 중간중간 이런 신기한 문들도 보고 좋았다. 약간 우리나라의 흥인지문 비슷한 포지셔닝일까...? 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건 영락없는 숭례문과 흥인지문.

대만 길거리 걸어다니다 보면 참 한국이랑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는 생각 많이 든다. 다음 포스팅으로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