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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aiwan/타이베이 Taipei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장제스기념당) 후덜덜했던 방문후기

2.28화평공원을 나와, 이제 2.28 사태의 주범인 장졔스를 기리는(!) 중정기념당에 갔다.

장졔스(쓰기 힘드니까 앞으로 장개석이라고 쓰겠다)는 박정희 급으로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냥 딱 대만의 박정희라고 생각하면 되는 인물이다. 그렇게 논쟁적인 인물을 기리는 장소를 수도 한복판에 상당한 규모로 세운다?

한국에서는 이러면 당장 돌 맞아도 모자랄텐데. 참 신기한 나라다. 과연 타이베이의 시민들은 이를 순순히 accept하고 지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중정기념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의 의문은 곧바로 현실이 되고...

중정기념당의 정문. 매우 크다.

한눈에 봐도 권위주의적으로 생긴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수직으로 우뚝 솟은 지붕과 높은 건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 아아 살아서도 권위주의 죽어서도 권위주의

'자유광장'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본디 이곳에는 '대중지정(大中至正)'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장개석의 본명 '장중정'이 이 사자성어에서 유래했기에 적어둔 것인데, 민진당의 역사적인 정권교체(천수이볜 총통 집권기) 이후 민주와 자유를 상징하는 광장이라는 슬로건으로 갈아치운 것.

이후 국민당 정부(마잉주 총통)가 재집권한 후에도 이 현판을 다시 갈아끼우는 짓은 차마 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정기념당이 대만 사회에서 얼마나 논쟁적인 장소인지 현판 하나로 보여주는 셈.

저 앞에 보이는 원형 건물이 바로 중정기념당. 양 사이드로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한가운데 뻥 뚫린 넓은 공간이 바로 민주광장.

광장의 사이즈는 실로 크고 아름답다. 예전에는 여기서 시위도 종종 일어났다고 하더라. 괜히 민주광장이 된 게 아니지 아무 일 없는 평상시에는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북적북적거린다.

데칼코마니처럼 생긴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 한국으로 따지면 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이 마주보고 나란히 서 있는 것 되시겠다.

중정기념당 전반을 그린 지도. 양 옆쪽으로 나름 잘 가꾸어진 정원도 있다고 한다.

크고 아름다운 중정기념당. 이곳에 올라가려면 89개의 계단을 거쳐야 하는데, 장개석의 나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계단 하나하나 세면서 올라갔는데 93개가 나와서... 뭔가 잘못 셌나 싶기도. 아무튼 계단이 89라고 말을 한다.

계단(...) 엘리베이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페이크다 이놈들아! 숨겨진 엘리베이터가 있다! 정면이 아니라 사이드 방면으로 돌아가면 버젓이 바로 장개석 동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안내라도 잘 좀 해주지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민주광장의 모습. 정중앙의 타이완 국기를 중심으로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 뷰가 정말 일품이다. 동시에, 이걸 다 내려다보고 있는 장개석의 동상을 떠올려보면... 죽어서도 권위주의X2

그리고 대망의 장개석 동상. 장개석이 중국 본토를 바라보고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살아생전 공산당에게 패퇴한 설움을 죽어서 이렇게 표현해버린다니

웅장한 천장. 관광객이 이곳에 가면 으레 엄청난 규모에서 뿜어져나오는 위압감에 움츠러들게 된다. 아무런 배경 없이 가면 장개석이 정말 대만인에게 국부로 통하는 사람이구나 할 정도. 정작 국부(founding father)는 따로 있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대만에서 장개석은 상당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혹자는 중정기념당은 독일에다가 히틀러 기념당을 만든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혹평을 퍼붓기도 할 정도. 하기사 대만 시민의 민주화운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탄압하고, 38년 동안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은 전무후무한 기록까지 세우신 분이니...

덕분에 수평적 정권교체기 이후, 민진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정기념당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천수이볜 총통 집권기 이곳은 '국립대만민주기념관'으로 탈바꿈했고, 장개석 개인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타이완 전역의 민주화 과정을 기념하는 곳으로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했다.

이후 또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국민당이 재집권한 시절, 이곳은 다시 중정기념당이라는 옛 이름을 회복하게 되고 장소성 역시 장개석 개인을 기념하는 색채가 짙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현재. 중정기념당의 장소성 변화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이어지고 있으며, 다시 대만의 민주화 역사를 기념하는 색채를 씌울 계획이라고. 하지만 또 국민당 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물론 민진당 입장에서는 중정기념당을 폭파하고 싶겠지만... 이미 타이베이의 최대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잡아버려 없애버리기도 실로 곤란한 입장이다. 과거사 정리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드러내주는 부분.

그래서일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근위병 두 명이 장개석 동상 앞에서 근무하고 있다.

눈 깜빡임 이외에 어떠한 동작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심지어 땀까지 다른 관리인이 와서 닦아줄 정도. 매 시간 하는 이들의 교대식 역시 하이라이트다.

나는 이걸 보기 위해 12시쯤에 적당히 맞춰서 들어왔다.

교대식 시간에는 중앙 홀을 완전히 통제하며, 빨간 라인 뒤로 관광객들을 몰아넣는다. 그렇게 장내 정리가 마무리되고 12시 교대식이 시작되나 했는데...

갑자기 누가 난입하더니 중국어로 큰 소리를 외치며 장개석 동상에 오물을 투척해버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서 있는 근위병의 모습이 일품

정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관광객 모두가 얼떨떨하게 얼어 있던 사이...

어느새 오물 투사는 제압당하고 있었고 상황은 빠르게 종료. 그래도 오물 투척에 성공했으니 본인의 목표는 소기 달성 완료인 것이다.

참... 장개석이 대만에서 엄청나게 논쟁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교대식을 어쨌든 생략할 수는 없기에 조금 늦게 진행된 식. 칼같은 동작이 정말 일품이다.

약 3~5분 정도 진행된 교대식. 근데 워낙에 그 오물투사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던지라... 교대식 자체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보고 나왔던 것 같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과거사가 남아 있는 상태가 얼마나 큰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던 장소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어코 찾아... 1층으로 내려와 밥 먹으러 이동했다.

밥 먹으러 가면서도, 그리고 오후 우라이로 향하는 시내버스 안에서도 중정기념당에서의 기억이 계속 맴돌았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맴돌았으리라.

하루빨리 한국에서도 지나간 역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언젠가는 완수되어야 하는 일들이니까.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이어진다.